녹번동 지명에 숨은 전설 도깨비고개의 유래
이름 뒤에 숨겨진 이야기 도깨비고개를 아시나요?
우리가 사는 도시에는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길이나 동네 이름 속에 오래된 시간의 흔적과 이야기들이 깃들어 있습니다.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 위치한 ‘도깨비고개’ 역시 그런 이름 중 하나입니다.
처음 이 이름을 들었을 때 누군가는 재미있는 지명이라고 여길 수도 있고 누군가는 으스스한 상상에 잠길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단지 특이한 이름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이 고개의 배경이 꽤 흥미롭고 또 그 속에 담긴 전설과 옛 사람들의 기억은 지금 우리가 사는 도시를 더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만들어줍니다.
과거 이 고개는 숲이 우거지고 인적이 드물어 밤이 되면 누구도 쉽게 지나가기 어려운 장소였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같은 자리를 도는 듯한 기묘한 체험을 했다고도 전해지며 사람들 사이에는 어느새 ‘이 고개에는 도깨비가 나온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었죠.
지금은 아파트와 도로가 조성된 평범한 길일지 몰라도 ‘도깨비고개’라는 이름에는 그 시절 사람들의 공포와 상상력, 그리고 전설이 살아 숨 쉬고 있는 셈입니다.
이 글에서는 그런 녹번동 도깨비고개의 유래와 문화적 의미에 대해 차근히 짚어보려 합니다.
1. 이름만 들어도 으스스한 도깨비고개의 전설
녹번동 도깨비고개는 지금의 불광천과 녹번역 사이에 있는 북한산 자락 고갯길 근처에 위치한 옛 지명입니다.
예전에는 도로와 가로등이 지금처럼 잘 갖춰지지 않았고 산과 숲이 우거진 오솔길 같은 분위기의 고개였습니다.
밤이 되면 가로등 하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았고 사람들이 거의 지나지 않아 무섭기로 소문난 길이었다고 합니다.
이 고개가 ‘도깨비고개’라 불리게 된 데는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있습니다.
이곳을 지나는 장사꾼들이 짐이 갑자기 사라졌다거나 어깨를 치는 손길을 느꼈다는 이야기,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도는 듯한 이상한 경험을 했다는 증언들이 있었고 사람들은 점차 이 고개에 도깨비가 출몰한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도깨비가 짓궂은 장난을 치는 고개’라는 소문은 곧 지명으로 굳어졌고
그렇게 녹번동의 이 고갯길은 오늘날까지도 ‘도깨비고개’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2. 도깨비고개는 왜 그렇게 많을까?
사실 ‘도깨비고개’라는 지명은 전국적으로 흔하게 존재합니다.
경기도 양평, 충북 청주, 심지어 부산까지도 곳곳에 도깨비고개라는 이름의 길이 있습니다.
이 고개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험준하거나 굽이진 산길이며 인적이 드물고 밤에 다니기 어려운 장소라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야간 산행을 꺼려했기에 그런 고갯길에는 자연스럽게 괴담이나 전설이 깃들곤 했습니다.
특히 한국 민속 속 도깨비는 해를 끼치기보단 사람을 골탕 먹이고 혼란스럽게 하는 존재로 자주 묘사되기 때문에 길을 잃거나 이상한 경험을 한 사람들은 도깨비 탓으로 돌리는 일이 많았죠.
즉 도깨비고개란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의 두려움과 상상이 반영된 문화적 흔적이기도 합니다.
3. 전설이 풍경이 되고 풍경이 역사가 되는 곳
오늘날 녹번동 도깨비고개는 더 이상 무서운 곳이 아닙니다. 아파트 단지와 불광천이 잘 정비되어 있고 주민들의 산책로로도 활용되는 평화로운 지역이 되었죠.
하지만 이곳의 지명에 담긴 전설은 여전히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지역의 옛 이야기와 사람들의 기억이 담긴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전설은 시간이 흐르며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일로 바뀌지만 그 당시 사람들의 감정과 분위기는 지명이라는 형태로 남게 됩니다.
도깨비고개는 그 자체로 민속적 자산이며 서울처럼 변화가 빠른 도시에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합니다.
한때는 무서운 곳으로 알려졌던 이 고갯길은 이제 도시문화와 스토리텔링 자산으로 재조명될 가치가 충분한 공간입니다.
낯선 지명이 전해주는 오래된 기억
도시의 발전 속에서 예전의 고개나 골목들은 하나둘 사라지고 새 길과 새 건물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하지만 그 이름만큼은 여전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남아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끈이 되어줍니다.
녹번동 도깨비고개도 그런 곳입니다.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평범한 거리지만 그 지명 속에는 밤길을 두려워하던 사람들의 마음, 낯선 기운에 놀라 도깨비를 떠올리던 상상력,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갔던 공동체의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이제 도깨비고개는 더 이상 무서운 고개가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가 되고 도시의 역사로 남는 길이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전설을 잊고 지나치겠지만 누군가는 그 이름을 통해 서울이라는 도시가 품고 있는 인간적인 표정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도깨비고개를 지나며 우리가 떠올려야 할 것은 단지 전설이나 괴담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감정과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이처럼 오래된 지명이 전해주는 정서는 그 길을 걷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작지만 따뜻한 울림을 남깁니다.